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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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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월호 2023년 6월호 묵상의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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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의 이야기

미지의 하나님


룻의 이야기


룻기는 엘리멜렉과 나오미 그리고 그들의 아들 말론과 기룐이 고향에 닥친 기근을 피해 모압으로 떠나면서 시작한다. 인간에게 그러한 이주는 당연하다. 논리적이고 현실적이다. 대규모 이주는 오늘날 세상의 두드러진 현상이며 사람들은 더 편리하고 더 나은 삶을 찾아 지금도 이동한다. 이주는 흔한 일이 되었고 더 나은 삶, 더 풍요로운 삶을 찾아 도시 또는 경제적으로 더 발전한 국가로 이주하는 것은 보편적인 지혜로 통한다. 결국은 최대한 더 나은 삶을 얻기 위해 그런 도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엘리멜렉과 그의 가족이 그랬고 나오미, 룻, 오르바도 그런 도전과 맞닥뜨렸다. 각자가 가야 할 최선의 길은 과연 무엇일까?


나오미

나오미는 며느리들에게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룻 1:8~9)라고 말했다. 나오미는 고국으로 돌아가려 했다. 관습에 따라 각자의 가족에게 돌아가는 것이 나오미와 며느리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었다. 룻과 오르바가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가 새로운 남편과 더 나은 삶을 찾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라고 나오미는 생각했다. 며느리들은 나오미의 제안에 어떻게 반응했는가?


오르바

이별하며 쏟은 눈물은 오르바가 나오미를 사랑하며 나오미 또한 그녀를 사랑한다는 분명한 증표였다. 오르바가 시어머니를 존경했다고 봐도 틀림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녀가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한 결정은 나오미에 대한 사랑과 존경에서 비롯했을 수 있다. 고향으로 떠나는 것이 아마도 새로운 남편과 자녀와 함께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일 것이라는 나오미의 주장을 오르바는 깊이 따져 본 뒤 동의했을 것이다. 실제 이유가 무엇이든 오르바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룻의 결정은 충돌을 불러일으키는 모양새다. 그의 논리는 보편적인 실용주의에 역행한다. 룻은 나오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겉보기에 룻은 오르바보다 나오미의 생각을 덜 존중하는 듯하다. 룻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구체적으로 생각하거나 걱정하지 않았다. 앞날이 아직 창창하니 재혼할 수도 있고, 변수가 많고, 일자리를 구할 수도 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 내용을 전하실 때 마치 룻의 이야기를 반영하시는 듯이 보인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25절). 룻이 염려한 것은 나오미와 그의 하나님뿐이었다.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룻 1:16). 이것은 관습에 순응하기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중시하는 담대한 믿음이다. 한마디로 마태복음 6장 33절은 룻의 믿음을 요약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후 룻의 이야기가 이 구절의 진실성을 증명하지 않았는가!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한 오르바의 결정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에게서 등을 돌리는 행위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해당 성경 구절은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룻 1:15)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오늘날 우리가 내리는 수많은 결정에 함축된 핵심을 짚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결과적으로 향상할 것인지를 세심하게 저울질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부모의 종교가 익숙하고 편안하기 때문에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변화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이주가 늘 좋기만하고 발전적인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이주하면서도 옛 방식을 고집하는 경우도 있고 변화의 방향이 더 나은 쪽으로 향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선택 문제와 관련해 하나님이 최우선을 차지하지 않으면 삶이 여러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룻의 이야기에서 오르바가 하나님께 공개적으로 저항한다는 단서는 찾기 힘들다. 단지 그분과 더 나은 관계로 인도할 길을 가겠다고 끝까지 고집할 정도로 신실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르바는 자신의 이전 관습과 이전 종교로 돌아가는 쪽을 택했다.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분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야 한다고 성경은 권고한다(벧후 3:18). 은혜안에서 성장할 때 우리는 변화를 경험한다. 이 구절은 또 지식을 터득하는 가운데 자라가라고 말한다. 변화와 배움은 연결되어 있다. 배움이란 어떤 면에서 행동의 변화를 뜻한다. 따라서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분을 아는 지식에서 자랄 때 변화된다.


미지의 세계를 붙잡다 

나오미와 함께 가기로 한 룻의 결심에 분명히 깔려 있는 듯이 보이는 계산은 이런 것이다.

룻은 나오미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가겠다는 태세이다. 이것은 모세가 잠깐 죄악의 쾌락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로 택한 것과 매우 비슷하다(히 11:25). 하나님을 찾기 시작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매력적으로 보이게 마련이다. 

룻은 자기 삶의 결말을 하나님의 손에 맡겼다.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도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좋았다. 나중에 예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 11:25)라고 말씀하시며 우리를 안심시키신 사실은 참으로 위로가 된다. 룻은 아마도 자신을 기다리는 영광스러운 미래에 대한 힌트를 쥐고 있었을 것이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그는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룻은 변화된 사람이었다. 그는 더 이상 고향의 문화와 관습으로 위로받고자 하지 않았다.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에게는 하나님이 필요했다. 그리고 미래는 알 수 없어도 미래의 하나님은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그분과 함께 미지의 세상을 끌어안을 수 있었다. 


찰스 에번스 북카리브해 대학의 입학사정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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